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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밥에 관한 시 9편 모음
    좋은 시 2023. 12. 6. 16:18

    김밥에 관한 시를 준비했습니다. 김밥은 소풍이나 나들이 갈 때 가서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인데요 요즘은 김밥 전문점에서 참치김밥, 돈가스김밥, 매콤 어묵김밥, 묵은지 김밥 등 다양한 종류의 김밥을 구입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 주는 김밥이 최고입니다. 김밥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김밥에 관한 시 소개해 드릴게요.

     

     

     

    김밥
    김밥

     

    김밥에 관한 시

     

    김밥에 관한 시 / 이근화

     

    어쩌다 김밥에 관한 시를 쓰게 되었다

    어쩌다 김밥을 먹게 되는 날이 있는 것처럼

    김밥하면 천국이 떠오르고

    천 원이나 천오백 원으로 어떻게 김밥을 말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김밥 둘둘 잘도 마는 조선족 아줌마들 임금이나 제대로 주는지

     

    그러나 김밥에 관한 시를 먼저 써야 하는데

    김밥하면 나는 친구 현숙이가 떠오른다

    김밥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더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김밥 때문은 아니고

    살다 보면 그렇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듯

    그냥 얻어터지는 날도 있고

    어제도 오늘도 만났던 사람을

     

    어느날 갑자기 만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죽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김밥 마는 여자를 좋아하던 평론가 형도 못 보게 되었다

    같이 동물원도 가고 했는데 좋은 사람이었는데

    김밥에 관한 시보다 김밥이 나는 더 좋다

    파는 김밥은 잘 못 먹고

    집에서 누가 좀 말아줬으면

     

    첫아이를 갖고 앉은자리에서

    김밥을 일곱 줄인가 여덟 줄을 먹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믿지 못할 일은 그것뿐이 아니다

    빈곤한 내 상상력에 활력을 주려는 듯

    아이가 침을 흘리고 또 흘리고 침은 참 맑다

     

    김밥 같은 건 이제 말아 먹을 여유도 없지만

    김밥에 관한 시를 써야 한다

    쓰다 보니 멸추김밥처럼 웃긴다

    내가 뭐 김밥에 관한 아는 게 있나 먹을 줄만 알지

    먹을 줄 아는 게 다 아는 건가

     

    요즘에 초밥을 더 많이 먹는다

    남편이랑 회전초밥집 가서 사만 오천 원어치나 먹어 치웠다

    너무하다

    사만 오천 원이면 김밥이 적어도 열여덟 줄인데

    너무하다

    그리고 배가 썩 부르지 않았다

    김밥 열여덟 줄이면 배가 터졌을 텐데

    층층이 쌓인 접시만 원망했다

     

    엄마 옆에 앉아

    계란도 깨주고 깨소금도 뿌려주었는데

    꼬투리 먹으면서 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나 했는데

    김밥 마는 날이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던 엄마는

    이제 다 늙어서 일곱 시 여덟 시까지 자도 된다

    김밥이 그립듯 엄마가 그리우면

    속이 정말 아플 것이다

    그럴 것이다

     

    김밥이 없으면 소풍도 그렇고 동물원도 그렇고 기차도 그렇다

    생에 최초로 공들여 만 심심하고 뚱뚱한 김밥은

    그 애가 참 잘 먹었는데

    이제 김밥집 없는 곳에서 아들딸 낳고 잘 사는지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으면 어떡하지

     

    따뜻하고 부드럽고 간간한 김밥이었으면 좋겠는데

    알록달록하고 가지런하고 고소한 김밥이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루에 이백 줄 한 줄에 십오 초면 되는

    달인의 김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천국의 김밥 그리운 김밥 없는 김밥 영원한 단무지

     

    김밥에 관한 시를 먼저 써야 하는데

    김밥보다 김밥이 먼저 나를 이끈다

     

     

     

    새벽 김밥 / 정호승

     

    먼동이 튼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다

    누가 나뭇잎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나 보다

    한석봉은 아직도 나뭇잎에다 글씨를 쓰고 있다고

    너도 열심히 나뭇잎에다 글씨를 쓰면서 살아가라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아직도 눈물로 말씀하시고

    새벽 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 사이로 햇살이 눈이 부시다

    누가 종소리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나 보다

    나는 이제 산 아래 칼을 버리고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던 길을 향해 떠난다

    어머니가 싸주신 새벽김밥을 들고

    또다시 길 위에 버려지기 위해

     

     

     

    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

     

    눈 내리는  수유 중앙 시장

    가게마다 흰 김이 피어오르고

    묽은 죽을 마시다 보았지,

    김밥을 말다가

    문득 김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는 여자

    끈적이는 생애의 죽간과

    그 위에 찍힌 밥알 같은 방점들을,

    저렇게 작은 뗏목이 싣고 나르는 어떤 가게를

    한 모금 죽을 마시며 보았지

    시큼한 단무지며 시금치며

    색색의 야채들을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 놓고

    붓꽃 같은 손이 열릴 때마다 필사되는

    검은 두루마리,

    이제는 하나가 된

    그 단단한 밥알 속에서 피어오르는

    삼색의 꽃들을

     

     

    김밥에 대한 시

     

    김밥 한 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 손택수

     

    점심에 김밥 한 줄 들고 월드컵공원에 나가 나무 그늘 아래 드는 일

    나무 그늘 아래 앉아

    가지와 가지 사이로 들어온

    하늘이 나뭇잎 몇을 품고 설레는 걸

    뜻 없이 지켜보는 일

    옛날에 나는 저 이파리를 보고 아가미를

    들었다 놓는 물고기를

    떠올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끊은 지 근 일 년 만에 근질근질 일어나는 수피처럼

    시가 떠오를 것 같은 순간마저

    그냥 내버려둔 채

    하염없이 내버려둔 채

    나뭇잎에 내 맘 한 자락 올려놓고

    불어오는 바람 따라 그저 무심히 흔들려 보는 일

    그런 일, 왜 항상 가장 먼 것은 여기에 있는지

    닿을 수 없는 꿈들을 옆에 둔 채 아픈 것인지

    아득하여라 김밥 한 줄 들고 월드컵공원 가는 일

     

     

     

    김밥 / 이재무

     

    김밥은 김빠진 인생들이 먹는 밥이다.

    김밥은 끼니때를 놓쳤을 때 먹는 밥이다.

    김밥은 혼자 먹어도 쑥스럽지 않은 밥이다.

    김밥은 서서 먹을 수 있는 밥이다.

    김밥은 거울 속 시들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며 먹는 밥이다.

    김밥은 핸드폰 액정 화면을 들여다보며 먹는 밥이다.

    김밥은 숟가락 없이 먹는 밥이다.

    김밥은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는 밥이다.

    김밥은 컵라면과 함께 먹으면 맛이 배가 되는 밥이다.

    김밥은 허겁지겁 먹을 때가 많은 밥이다.

    김밥은 먹을수록 추억이 두꺼워지는 밥이다.

    김밥은 천국 대신 집 한 채가 간절한 사람들이 먹는 밥이다.

    먹다 보면 목이 메는 밥이다.

    터널처럼 캄캄한 밥이다.

    김밥은 바다에서 난 생과 육지에서 나고 자란 생이 만나 찰떡궁합을 이룬 밥이다.

     

     

     

    김밥천국 / 박소란

     

    연인이 밥을 먹네

    헝클어진 머리통을 맞대고 늦은 저녁을 먹네

    주방 아줌마 구함 벽보에서 한걸음 물러나 정수기가 놓인 맨 구석 자리에 앉아

    푸한 김밥 두어줄 앞에 놓고 고꿉을 살듯

    여자가 콧물을 훌쩍이자 그 앞으로 쥐고 있던 냅킨 조각을 포개어 내미는

    남자의 부르튼 손이 여자의 붉어진 얼굴이

    가만가만 허기를 달래네

    때마침 식당 앞 정류장에 당도한 파주행 막차

    연인은 김밥처럼 동그란 눈으로 젓가락질을 멈추네

    12월의 매서운 바람이 잠복 중인 바깥

    버스 뒤뚱한 꽁무니를 넋 없이 훔쳐보다 이내 버스가 떠나자

    그제야 혓바닥 위에 올려둔 김과 밥의 부스러기를 내어 재차 오물거리네

    흰머리가 희끗한 주인은 싸다 만 김밥 옆에서 설핏 풋잠에 들고

    옆구리가 미어지도록

    연인은 밥을 먹네 김밥을 먹네

     

     

    김밥에 관한 좋은 시

     

    삼각 김밥 / 이규리

     

    밥이란 둥글다고 여겨왔는데

    왜 삼각일까

    간밥의 말다툼이 가시지 않은 아침

    일찍 나와 산책길 돌다 공원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먹는다

    싸늘하다

    삼각관계란 말 때문일까

    삼각 김밥은 어째 좀 불편하다

    밥을 싸고 있는 얇은 비닐도

    주의해서 벗기지 않으면

    밥과 김이 따로 논다

    편의점에서 홀로 먹는 아침

    마음에 도사린 각이 있어선지

    밥 대신 유리 알갱이를 씹는다

    핏물도 돌지 않는 마른 밥

    밥이라고 베어 먹은 각들이

    고스란히 속에 무덤을 만든 듯

    종종 먹은 삼각들 겹겹 포개져 있다면

    차가웠던 아침 식사는

    입 안을 찔러댔던 각은

    뾰족한 무덤이 되었을까

    오래된 피라밋처럼

     

     

     

    김밥천국에서 / 권혁웅

     

    김밥들이 가는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멍석말이를 당한 몸으로

    콩나물시루도 아닌데 꼭 조여져서

    육시를 당한 몸으로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닌데 잘게 토막이 나서

     

    나란히 누운

    치즈복자, 참치복자, 누드복자들

    순교의 뒤끝에서 식어가는 밥알은

    김밥들이 천국에 가기 위해 버려야 하는

    헐거운 육신이다

     

    김밥들이 가지 않는 불신지옥도 있을까

    버려진 몸들답게 김밥들은 금방 쉰다

    시금치는 시큼해지고 맛살은 맛이 살짝 갔지

    계란은 처음부터 중국산이야

     

    마음이 가난해도 천오백 원은 있어야

    천국이 저희 것이다

     

    천국에 대한 약속은

    단무지처럼 아무 데서나 달고

    썰기 전의 김밥처럼 크고 두툼하고 음란하지

    나는 태평천국의 난이

    김밥에 질린 세월에 대한 반란이라 생각한다

     

    너희들은 참 태평도 하다

    여전히 천국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복장 터진다는 말은 김밥의 옆구리에서 배웠을 것이다

    소풍 가는 날에 비가 온다는 속담도

    쉰 김밥이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깨소금 데코레이션을 감당하는 그 나라,

    김밥천국

    자기들끼리만 고소한 그 나라 바깥의

    불신지옥

     

     

     

    눈물의 김밥 / 박노해

     

    새벽 두시 김밥을 먹는다

    피멍든 몸을 떨어가면서

    갈라터진 혓바닥에 침 젹셔가며

    안기부 지하밀실 야식을 먹는다

    방금까지 비명 터지던 고문장에서

    목메인 김밥을 씹어먹는다

     

    마른버짐 볼에 핀 어린날이었던가

    소풍가서 먹었지 달디단 그 김밥

    잔업 때 억지로 삼키던 팍팍한 매점 김밥

    지난 여름이었지 울산 가는 기차를 타고

    아영이랑 나눠 먹던 그리운 김치김밥

    앞으로 아홉밤 - -

    살아 나가자 기어코 이겨서

    이 참혹한 고문의 밤을 끝끝내 뚫고

    떳떳한 목숨으로 살아 나가자

     

    아 만약 나 살아 나간다면

    언젠가 어느날인가 햇살 온몸에 다시 받는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김밥을 싸들고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보리라

    가서 들꽃처럼 정결한 웃음에 젖어

    촉촉한 눈물의 김밥을 먹으리라

     

    술냄새 풍기는 건장한 고문자들에 싸여

    군복에 검정고무신 신고 짐승처럼 떨며

    꾸역꾸역 모멸찬 김밥을 먹는다

    안기부 지하밀실 고문장, 잠시 후 시작될

    처절한 공포의 순간들을 씹으며

    피맺힌 적개심으로 씹으며

    새벽 두시 눈물의 김밥을 먹는다

     

     

     

    김밥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김밥에 담겨 있는 사연도 다양하네요. 언제나 먹어도 맛있고 배불러 기분 좋게 해주는 김밥처럼 우리도 만나면 언제나 기분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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