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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짧고 좋은 시) 짧고 좋은 시 모음
    좋은 시 2022. 3. 15. 11:41

     

     

    짧고 감동적인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의 시는

    시를 잊었던 나에게
    짧고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렵지 않은 말들로
    공감과 순수했던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시는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사랑편지 같은
    시 읽으며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남의 앞에 섰을 때
    교만하지 않고
    남의 뒤에 섞을 때
    비굴하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미워할 것을 마땅히 미워하고
    사랑할 것을 마땅히 사랑하는
    그저 보통의 사람.

     

     


     

     

    말하고 보면 벌써

    말하고 보면 벌써
    변하고 마는 사람의 마음

    말하지 않아도 네가
    내 마음 알아 줄 때까지

    내 마음이 저 나무
    저 흰 구름에 스밀 때까지

    나는 아무래도 이렇게
    서 있을 수밖엔 없다.

     

     


     

     

    떠나야 할 때를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잊어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우리는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나의 흰구름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너의 흰구름

    누군가 개구쟁이 화가가 있어
    우리를 붓으로 말끔히 지운 뒤
    엉뚱한 곳에 다시 말끔히 그려넣어 줄 수는
    없는 일일까?

    떠나야 할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잊어야 할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한 나를 내가 안다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여러 종류의 다육식물이 모여 있는 모습

     

     

     


     

     

    행복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그리움

    햇빛이 너무 좋아
    혼자 왔다 혼자
    돌아갑니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
    눈을 둘 곳이 없다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 바라볼 수도 없고
    그저 눈이
    부시기만 한 사람.

     

     


     

     

    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나무 테이블 위 양철 화분에 핀 하얀색 꽃

     

     


     

     

    별들이 대신해주고 있었다

    바람도 향기를 머금은 밤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 가에서
    우리는 만났다
    어둠 속에서 봉오리진
    하이얀 탱자꽃이 바르르
    떨었다
    우리의 가슴도 따라서
    떨었다
    이미 우리들이 해야 할 말을
    별들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봄이란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아직은 겨울이지 싶을 때 봄이고
    아직은 봄이겠지 싶을 때 여름인 봄
    너무나 힘들게 더디게 왔다가
    너무나 빠르게 허망하게
    가버리는 봄
    우리네 인생에도
    봄이란 것이 있었을까?

     

     


     

     

    11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추운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더욱이나 내가 비천한 사람이라면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생각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때때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게 아여 주옵소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대숲 아래서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국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차지다.

    ㅡ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中

    초록 들판에 햇빛이 비치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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