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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 31선 모음입니다
    좋은 시 2022. 11. 5. 14:35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25선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몇 번 읽어 보셨을 텐데요 그중에서 더욱 사랑받고 있는 시를 모아봤어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속에 내가 좋아하는 시가 포함되어 있으면 더 반가울 거예요. 마음 따뜻하게 채워줄 아름다운 시들을 감상하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 31선 모음입니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서시 / 윤동주

     

    죽는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자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은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우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 드려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럭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땜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을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을 떼어주고 가는 삶은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초혼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내 마음 /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 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옷 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 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우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불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가리다

     

     

    별을 쳐다보며 / 노천명

     

    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친구보다

    좀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댓자

    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댓자

    또 미운 놈을 혼내 주어 본다는 일

    그까짓 것이 다아 무엇입니까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가을의 기도 /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서 다 다른 까마귀같이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의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처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져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산 /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 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서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 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 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사랑의 전설/ 서정윤

     

    사랑은 아름다워라

    그대 눈빛 보고 있으면

    촛불이 다 타는 것도 잊고

    떨리는 그림자를 숨기며

    그냥 그대 앞에만 있고 싶어라

     

    사랑은 굳건하여라

    생각이 요구하는 어떤 것도

    그대 향한 믿음의 나무보다

    튼튼하지 못하고

    한갓 말이 부리는 재주에

    흔들리지 않는 사랑으로

    내 그대에게 다가가리니

     

    사랑은 생명이어라

    메마른 마음의 깊은 계곡에

    풀이 돋아 꽃을 피우는 사랑은

    죽음조차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전설이어라

     

    하지만 사랑은 아픔이어라

    그 끝 보이지 않는

    오랜 기다림으로도

    사랑의 속삭임 들을 수 없어

    내 소중한 나를 다 버려도

    사랑의 미소는 잡을 수 없다

    사랑의 아픔은 더욱 소중하여라

     

    오래 남는다

    사랑의 상처는 너무 오래 남는다

    아득한 시간이 흘러 아픔 사라져도

    상처의 흔적은 남아

    슬프지 않은 추억이 된다

    사랑의 전설이 된다

    사랑의 전설은 언제나 아름답다

     

     

    하루만의 위안 /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는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사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그리움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아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너의 이름을 부르면 / 신달자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풀이 죽어

    마음으로

    너의 웃음을 불러들여

    길을 밝히지만

    너는 너무 멀리 있구나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나를 키우는 말 /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이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까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굽이 돌아가는 길 / 박노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어진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잘 읽어 보셨나요 잔잔한하게 감동을 주는 시 한편 마음에 담아 두시고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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