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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힐링 되는 좋은 시 - 신경림 시 모음좋은 시 2022. 3. 25. 10:31
신경림 시인의 시를 읽으면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깊은 울림이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힐링이 되는 좋은 시입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 읽으며 마음 정화되는 시간 되세요.
신경림 시인은 <문학예술>에 「갈대」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농무」 「새재」「가난한 사랑의 노래」「길」등이 있습니다.
갈대
언제부터인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길
길을 가다가 눈발치는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 맺힌 새빨간 열매를 본다
잃어버린 옛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멀리 날아가버린 노래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 갈대 서걱이는 강길을 가다가
빈 가지에 앉아 우는 하얀 새를 본다
헤어진 옛 친구를 본다
친구와 함께 잊혀진 꿈을 찾는다
길을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
산길 강길 들길을 가다가
내 손에 가득 들린 빨간 열매를 본다
내 가슴속에서 퍼덕이는 하얀새
그 날개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과 어우러진 내 노래 소리를 듣늗다
길을 가다가
길을 가다가
나목(裸木)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림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그늘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는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또 한번 겨울을 보낸 자들은
살아서 남은 자들은 기쁨에 들떠
창을 열어 따스한 바람을 맞아들고
맑은 햇살을 손에 받고
문득 잊었던 이름 생각나면 짐짓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하고
밤이면 서로의 몬 뜨겁게 탐하며
싹으로 트고 꽃으로 피기 위해서
머지않아 가진 것 다져 열매도 맺어야지
지상에서 가장 크고 단 열매를
흙이 되어버린 이들의 뜨거운 피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또 닥칠 비바람을 이기기 위해서
더 단단히 몸을 여미고 죄면서
잊었던 이름 더 까맣게 잊어버리며
살아서 남은 자들은
또 한번 겨울을 보낸 자들은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같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누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나무 1 - 지리산에서
나무를 길러 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 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는 일이 어찌 꼭 이와 같을까만
가난한 사랑의 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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