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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에 관한 시 모음 17편 따뜻한 좋은시
    좋은 시 2023. 6. 19. 14:19

    할머니에 관한 시에는 할머니의 따뜻함과 그리움이 담겨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옆에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때로는 쉼을 주기도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할머니에 관한 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할머니-손
    할머니-손

     

    할머니에 관한 시 모음

     

    할머니랑 소쩍새랑 / 나태주

     

    초록물감 질펀하게 아푸러진

    이파리 하나한 지느러미를 달고 날개를 달고

    하늘바다를 파들거리는 나무, 나무 수풀 사이

    소쩍새 울음소리 깊은

    우물을 파고 들어앉고

     

    조이 창문이 두 개 달린 집

    두 개 가운데 하나만 불이 켜져서

    밤마다 나는 황금의 불빛 아래

    숨 쉬는 조그만 알이 되고

    아침마다 나는 솜털이 부시시한 어린 새 새끼 되어

    알껍질을 열고 나오고

    외할머니 늘 조심스런 눈초리로

    지켜보고 계셨다

     

    불 켜진 조이 창문이 쓰고 있는

    썩어가는 볏짚 모자 속에

    굼실굼실

    뒹굴며 자라는 굼벵이들

     

    짹째글 참새들, 찍찍 쥐새끼들

    더러는 굼벵이나 참새, 쥐새끼를 집어먹으며

    몸통이 굵어가는 구렁이들

     

    나는 참 이승에서 외할머니한테

    진 빚이 많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는 / 박노해

     

    할머니 제삿날 밤

    어머님이 그리운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네 할머니가 떠난 자리는 늘 정갈했느니라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고 나면

    솥뚜껑에도 살강에도 먼지 한 점 없었고

    해질녘 논밭을 나올 때면

    이삭단도 거름 더미도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느니라

     

    할머니가 난생처음 버스를 타고 벌교장 가던 날

    정류장 바닥에 흰 고무신을 단정히 벗어 두고

    버선발로 승차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꽃이 터졌고

    달 밝은 밤 슬그머니 도둑이 들었을 때도

    가난한 집안 살림이 잘 정돈돼 있고

    마당에 빗자루 자국이 하도 선명해

    그만 발길을 돌려나가다 빗자루로

    제 발자국을 쓸고 돌아갔다는 이야기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부터

    장롱 서랍을 정리하고 장독대와 부엌을 정리하고

    울타리가 화단에 줄지어 꽃씨를 심어 놓고

    갓 시집온 어머니를 불러 며늘 아가 미안하다

    이웃집에 달걀 두 꾸러미, 아랫집에 보리 석 되

    건너 마을 김씨네에 깨 한 되 찹쌀 한 알,

    이장에 소 부린 품삯을 조목조목 일러 주고

    한 사흘 앓다가 가는 잡에 살풋 가신 우리 할머니

     

    그녀가 떠난 자리는 늘 단정했기에

    그녀는 인생을 뒤돌아 보지 않고

    단단한 걸음으로 날마다 전진했으니

    그녀가 떠난 다음 해 봄날 아침

    단아하게 피어난 금낭화 붓꽃 작약 꽃을 보고

    꽃밭에 홀로 앉아 울었노라고

    어머니는 그리운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는 늘 단정했는데

    내가 떠나간 자리는 여전히 부끄러워

     

     

     

     

    슬픔을 대하는 자세 / 김선우

     

    아침의 할머니가 말했어

    슬픔은 숭고한 감정이란다

    슬픔을 느낄 줄 알기에

    인간은 모다 인간다워졌지

    슬픔이 찾아오면 깊이 포옹하렴

     

    점심의 할머니가 말했어

    슬픔을 너무 오래 방치하면 늪이 된단다

    슬픔의 늪은 전염력이 강해서

    한 번 빠지면 나오고 싶지 않아지지

    습관이 된 슬픔은 인간을 나약하게 한단다

     

    저녁의 할머니가 말했어

    슬픔을 깊이 느끼되

    슬픔의 끝을 생각하렴

    진짜 슬픔은 깊고 짧다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주어 슬픔을

    벗어나는 지혜를 연습하렴

     

     

     

    할머니 편지 / 이동진

     

    느그들 보고 싶어 멧 자 적는다

    추위에 별일 없드나

    내사 방 따시고

    밥 잘 묵으이 걱정 없다

    건너말 작은 할배 제사가

    멀지 않았다

    잊아뿌지 마라

    몸들 성커라

     

    돈 멧 닢 보낸다

    공책 사라

     

     

     

    할머니의 꽃말 / 김동기

     

    할머니는

    가슴 치시면서

    고개 숙인 할아버지에게

    낭만이 돈을 갖다 주느냐

    예술이 밥을 먹여 주느냐

    웬수야 웬수야 하신다

     

    웬수란

    귀찮아도 있어줘서 고맙고

    곁에 없으면 불쌍하고 불안하고

    아주 없으면 원망스럽기도 하고

    밤마다 구구절절 눈물에 젖게 하는

    이 세상 노인들의 사랑 법

    오래나 사슈 하는 고백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노기에

    그 깊은 고백을 아시는 듯

    실 빛 같은 미소로

    나를 잡아 잡수 하신다

     

     

    할머니의 겨울 / 서정홍

     

    보일러 기름통에

    석유만 가득 차면

    배가 부르다는 할머니

    시집간 손녀가

    기름통에 석유 가득 채워주고 간 날부터

    다음 해 겨울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착한 손녀가

    기름통 가득  채워주고 갔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참지 못하는

    우리 할머니의 겨울은 참 따뜻하다

    일찍 부모 잃은 어린 손자 손녀들 돌보며

    내가 자식 잡아먹은 직일년이라고 울면서도

    살림살이 어느 한 군데도

    흐트러지지 않고 야무지게 사시는

    우리 할머니의 겨울은 참 따뜻하다

    가득 찬

    기름통 하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할머니에 대한 시 모음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 신경림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 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정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할머니의 집 / 이지영

     

    철엽 녹슬어있는

    나무대문 열면

    억새풀 산만한 토담집

     

    슬픈 각시 오나가나

    추억안고 찾아온 고향

    목단꽃송이만 흐드러져 반기네

     

    돋보기 풀석이며 털어내는 먼지

    청빈의 물독에 한 동이 부어

    붉은 장작불 지펴 잉걸로 피어내면

     

    자식들 서울로 빼앗긴 몸

    들어가 누울 곳은 여기뿐인가

    퇴색된 사진 몇 장 숨가삐 살아오르네

     

     

     

    할머니 / 김명인

     

    삼륜 지나가다 정거장 건너편, 텃밭이었던 자리

    이젠 누구네 마당가에

    저렇게 활짝 핀 복숭아 몇 포기, 그 옆엔

    빨간 토마토가 고추밭 사이로 주렁주렁 익고 있다

     

    왜 내겐 어머니보다 할머니 기억이 많은지.

    명석을 말아내고 참개를 털면서

    흙탕물이 넘쳐나는 봇도랑 업고 건너면서

    둑방가에 힘겨워 쉬시면서, 어느새

    달무리에 들고 그 둘레인 듯 어슴푸레하게, 할머니

    아직도 거기 앉아 계세요?

     

    나는 장수하며 사는 한 집안의 내력이

    꼭 슬픔 탓이라고만 말하지 않겠다

    가만 우리가 추억이나 향수라는 이름말고 저 색색의

    눈높이로 고향 근처를 지나갈 때

     

    모든 가게는 그 전설에 도달한다. 그리고 뒷자리는

    늘 비어서 쓸쓸하다

     

     

     

    할머니의 입 / 윤동재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 넣어 주실 때마다

    할머니도

    아~

    아~

    입을 크게 벌리지요

     

    할머니 입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이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릴 때마다

    할머니도

    내 동생을 따라

    입을 우물우물 하지요

     

    할머니 입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우리 할머니 / 서재환

     

    자나 깨나 할머니는

    성경책만 읽으신다

     

    감자밭 감자 캐듯

    책 이랑을 더듬으며

     

    굵다란

    감자알 같은

    굵은 말씀 캐내신다

     

    가다가는 한 번씩

    그 이랑 되돌아가

     

    이삭 감자 주어내듯

    놓친 말씀 다시 줍고

     

    마음의 

    광주리 찬 듯

    눈을 지긋 감으신다

     

     

     

    할머니의 바늘구멍으로 / 윤수천

     

    할머니가 들여다보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잖는데

    할머니 눈에는 다 보이나 보다

     

    어둠 속에서도

    실끝을 곧게 세우고는

    바늘에 소리를 다는

    할머니 손

     

    밤에 보는 할머니의 손은 희다

    낮보다도 밝다

     

    할머니가 듣고 있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소문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잖는데

    할머니 귀에는 다 들리나 보다

     

     

    할머니 시 모음

     

    ㄱ자 / 박두순

     

    할머니 허리가 자꾸 굽어지더니

    마침내 ㄱ자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귀도 허리 굽혀

    손주의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봅니다

    손주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서 업어 줍니다

     

     

     

    할머니와 나 / 배정순

     

    우물의 깊이를 보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수돗물의 속도를 만지며

    삽니다 나는.

     

    고무신 신고 땅의 감촉을 느끼며

    산과 들을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들판을

    건너다보며 삽니다 나는.

     

    내가 못 보고 느낀

    우물의 깊이와 땅의 감촉을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가르쳐줍니다 어머니는.

     

     

     

    계단 길 / 길상호

     

    발목이 부은 할머니는

    오르막 계단 길

    몸뚱어리 하나만도 무거워

    그림자 떼어놓고 오른다

    난간을 잡고 헐떡이던 숨소리

    잠시 민들레처럼 주저앉아

    샛노래진 얼굴을 닦는다

    굳어버린 할머니 등처럼

    꼬깃꼬깃 사연들 접혀 있는 길

    한 해 또 지나면

    더 가팔라질 것인데

    이승 고개 후딱 넘어야지

    혼잣말을 들은 오후 햇살이

    할머니 주름 계단에

    주르르 미끄러진다

     

     

     

    감자 / 장만영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

    아,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아버지 주먹만이나 하다

     

    올 같은 가뭄에

    어쩌면 이런 감자가 됐을까?

    할머니는 무슨 재주일까?

     

    화롯불에 감자를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 저녁 할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머리가 허연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보내 주신 감자는

    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

    간장에 조려

    두고두고 밥반찬으로 하기로 했다

     

     

     

    오래 살아야 할 이유 / 김용삼

     

    시골 할머니 집에서

    딩동딩동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아빠 혼자서 들 수 없을 만큼

    큰 종이 상자에 가득

    김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당장 밥을 달라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습니다

    우리 식구는 할머니가 보내온

    김치 하나만 가지고

    이른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빠는

    따르릉따르릉 시골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는 할머니에게

    철부지 소년처럼 재잘재잘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담근 김치 말고는 맛없어 못 먹는다고

    김치 때문에라도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아빠의 눈시울은

    시골집 감나무의 홍시처럼 붉어졌습니다

     

    한두 달이 지나면

    김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택배가

    우리 집에 또 도착할 것입니다

     

     

    조건 없는 할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에 관한 시가 세상살이 만만하지 않다고 느낄 때 할머니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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