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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의 좋은 시
    좋은 시 2022. 10. 20. 16:23





    10월의 좋은 시
    10월에는 시 읽기 좋은 계절인 것 같아요.

    10월의 풍경들이 시 한 편을 읽는 것 같아
    모두가 시인의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파란 가을 하늘과 빨갛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보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10월
    마음도 따라 빨갛게 익어갑니다.

    10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시 한 편 읽으며 이 가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빨간 단풍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






    10월의 아침


    윤보영



    10월이 되었습니다
    10월을
    기다렸던 사람도 있을 테고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나처럼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당당하게 10월의 맞이하고
    10월의 주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매년 그러했듯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10월
    지금부터 내 10월을
    나를 위한 10월로 만들겠습니다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낙엽 보이는 창가에 앉아
    부드러운 커피도 마시면서
    내 안에 찾아온 10월을
    즐기면서 보내겠습니다

    생각 한 번 바꾸었는데
    쓸쓸한 표정 짓던 10월이
    꽃다발 같은 미소로 다가섭니다

    "그래, 10월!
    우리 한 번 잘해보자!"
    꽃밭 같은 마음 내밀고
    10월을 맞이합니다

    사랑합니다


    노란색과 주황색 빨간색이 섞여 있는 단풍나무와 파란하늘





    가을 여행


    나태주



    멀리멀리 갔지 뭐냐
    그곳에서 꽃을
    여러 송이나 만났지 뭐냐
    맑은 샘물도 보았지 뭐냐

    그렇다면 말이다
    혼자서 먼 길 외롭게
    힘들게 찾아간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으냐


    노란 은행잎과 파란하늘






    추억으로 오는 가을


    이채



    가로수 길 위로 뒹구는 낙엽이
    긴 머리카락 사이로 불어오면
    안개처럼 흐림 추억이 가을로 스치네

    아득한 기억 속에서도
    아름답고 소중했던
    삶의 뒤안길에 새겨진 발자국 위로
    나는 지금 가을을 걷고 있네

    낙엽 한 장 주워 물끄러미 바라보면
    가는 잎새를 줄기에 새겨진
    풀잎 같은 사랑과
    얇은 이파리 부스러질 듯
    내 작은 이별도 서려있네

    그리움과 아쉬움이
    낙엽의 앞뒤로 새겨져
    흩어졌다 저 멀리
    무리 지어 나는 새처럼

    남겨진 것들은 지워지지 않고
    잊힌 것들은 다시 떠오르는
    이 거리 낙엽이 추억으로 흩날리네

    먼 훗날 간직하기 좋을
    갈잎 하나 챡 갈피에 끼우며
    나는 지금 추억으로 오는 가을을 걷고 있네



    가까이에서 본 주황색 나뭇잎과 하얀구름이 있는 하늘






    가을은 짧아서


    박노해



    가을은 짧아서
    할 일이 많아서

    해는 줄어들고
    별은 길어져서

    인생의 가을은
    시간이 귀해서

    아 내게 시간이 더 있다면
    너에게 더 짧은 편지를 썼을 텐데

    더 적게 말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텐데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귀한 건 시간이어서
    짧은 가을 생을 길게 살기로 해서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단풍이 물든 나무가 있는 공원 풍경






    너에게


    정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지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본 잎이 둥근 단풍 나뭇잎






    가을 편지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좋이 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이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 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가로등이 있는 길 옆 빨갛게 물든 나무





    가을바람


    이해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는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알록달록 물든 나무가 있는 공원 풍경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고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빨갛게 물들어 가는 단풍나뭇잎






    가을 비망록


    김인육



    최후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이다
    서늘한 눈매로 서 있는 가을 나무는
    지는 해 저녁놀 곱게 물들이듯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고 싶은 것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하지 않은 자
    어디 있겠고
    마침내 결별이 아프지 않은 자
    어디 있겠는가
    가을은
    노랗게 혹은 빨갛게 울음의 색깔을 고르며
    불꽃처럼 마지막을 타오르고 있다

    빛나는 한때를 간직한 가을 나무는
    알고 있다
    하나 둘 떨구는 이파리마다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막막한 절말을 지워 가는 법을
    그 간절함의 빛깔로
    눈 감아도 선연히 되살아 오는 얼굴들
    가슴 깊숙이 나이테로 새겨 두는 법을



    노란색 주황색으로 물든 나무가 있는 숲속 길






    깊은 가을


    도종환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비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 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 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시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 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간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오는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떨어져 쌓여 있는 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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