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헤르만 헤세 시 모음 21편 삶을 노래한 좋은시

오늘의 좋은글 2023. 6. 16. 16:22

헤르만 헤세 시는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헤르만 헤세는시인이며 소설가, 화가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싯다르타'등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의 소설이나 시에는 삶 속에서 깨닫기를 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헤르만헤서-박물관
헤르만헤세-박물관

 

 

헤르만 헤세 시 모음

 

 

행복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한

행복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네 것일지라도.

 

잃어버린 것을 애석해하고

목표를 가지고 초조해하는 한

평화가 어떤 것인지 너는 모른다.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행위의 물결이 네 마음에 닿지 않고

너의 영혼은 비로소 쉬게 된다.

 

 

행복해진다는 것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라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계단

 

꽃이 모두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꺾이 듯이,

인생의 각 계단도, 지혜도, 덕(德)도 모두

그때그때만 꽃을 피울 뿐, 영속되지 않네.

삶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용감하게

새로운 다른 속박으로 들어가듯이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다져야 하네.

무릇 일의 시작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여 왔네......

그것은 우리를 지켜 주고 사는 데 도움이 되느니.

 

우리는 모든 공간을 차례로 명랑하게 밟고 나가야 하네.

어느 장소에서나 고향 같은 집착일랑 두지 마라.

우주 정신은 우리를 잡으려고도, 구속하려고도 않고

우리를 한 계단 높여 주고 넓혀 주려 하네.

힌 생활권에 뿌리를 내리고

편안하게 들어앉으면 탄력을 잃기 쉬우니,

늘 출발과 여행의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마비된 습관에서 벗어나리라.

 

임종 때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하여

젊고 기운차게 나아갈지도 모르니

우리를 부르는 삶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법이 없으리라.

그럼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가!

 

 

청춘의 정원

 

내 청춘은 정원의 나라였다.

풀숲에서 은빛 샘물이 솟아나고 

고독의 짙푸른 그늘은

내 분방한 꿈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갈증을 느끼며 나는 이제 뜨거운 길을 간다.

그러나 내 청춘의 나라는 닫혀 있고

장미들은 담장 너머로

내 방랑벽을 비웃듯 고개를 까닥인다.

 

내 서늘한 우듬지의 살랑이는 노랫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가고

그때보다 더 아름답게 울리는 그 소리에

나는 길고 간절히 귀 기울인다.

 

 

내 젊음의 초상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되어버린 먼 과거로부터

내 젊음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으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를

 

그대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변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그 길을 두 번 다시 걷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내 길을 성실하게 걸어왔고

그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잘못도 실패도 많았지만

나는 절대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여름의 절정

 

먼 곳의 푸르름이 이미 투명해지고 

정신으로 충만해지고 한껏 밝아져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한 음향이 된다.

9월만이 오롯이 그걸 모아 놓는다.

 

무르익은 여름은 밤새도록

축제를 위해 색색으로 물들려고 한다.

그 축제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히 다 이룬 상태에서

웃고 기꺼이 죽으려고 한다.

 

영혼이여, 이제 시간에서 빠져나오너라.

근심걱정에서 벗어나거라.

그리고 열망하던 아침 속으로

비상할 준비를 하거라.

 

 

유리알 유희

 

우주의 음악을, 명인의 음악을

공경하고 경청하며

행복한 시대의 존경하는 정신을

정결한 축제에 불러올 용의가 있네.

 

마법의 상형문자의 비밀에 의해

우리들은 높여지네.

그 속에 끝없는, 거칠게 몸부림치는

생명의 흘러들어 티 없는 비유가 되어 있기에.

 

성좌처럼 투명하게 그것은 울리네.

그것에 봉사함으로써 우리의 생명에 의미가 있네.

그 원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신성한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이네.

 

 

헤르만 헤세 좋은 시

 

어딘가에

 

무거운 짐에 허덕이며

뜨거운 삶의 푸서리를 헤매지만

잊어버린 어딘가에

서늘하게 그늘진 꽃핀 정원이 있다.

 

꿈속의 먼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안식처가 있다.

영혼이 다시 고향을 가지고

졸음과 밤과 별이 기다리는.

 

 

안개 속에서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덤불과 돌은 모두 외롭고

수목들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나의 생활이 아직도 밝던 때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 안개가 내리니

누구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에서,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가만히 격려하는

어둠을 모르는 사람은

정녕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닐면 참으로 이상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이다.

 

 

 

세상의 모든 책이

너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책은 네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 속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지.

 

내 자신 속에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고

태양과 별 그리고 달도 있나니,

언제나 네가 찾던 빛은

네 자신 속에 존재하기 마련이란다.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고

 

복숭아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꽃이라고 모두 열매가 되지 않는다.

꽃들은 장미 거품처럼 푸른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반짝인다.

 

생각도 꽃피듯

매일 수백 번씩 떠오른다.

꽃피게 하라! 그대로 두어라!

무얼 얼마나 얻었는지 묻지 마라!

 

놀이도, 천진난만함도,

흐드러지게 꽃피는 일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작고

삶의 낙 또한 없을 테니까.

 

 

비누방울

 

길고 긴 세월의 연구와 사상에서

뒤늦게 한 노인이 만년의 저작을

증류시키네, 그 헝클어진 덩굴 속에

그는 장난삼아 달콤한 여러 지혜를 자아 넣네.

 

넘치는 정열에 못 이겨 열렬한 한 학생이

공명신에 불타 도서관이며 문고를

열심히 찾으며 돌아다녀

천재적인 깊이가 담신 청춘의 저작을 엮었네.

 

한 소년이 앉아서 지푸라기 속에 숨결을 불어넣네.

또한 영롱한 빛깔의 비누 방울 속에 입김을 불어넣네.

거품 하나하나가 반짝이며 찬미가처럼 찬양하네.

소년은 마음을 몽땅 불어넣네.

 

노인도 소년도 학생도, 세 사람 모두

현세의 덧없는 거품 속에서

신비로운 꿈을 만드네, 그것 자체는 무가치하지만

그 속에서 영원의 빛이 미소지으며

자신을 알고 한결 즐겁게 타오르네.

 

 

혼자

 

땅 위에는

수많은 도로와 길이 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목적지가 같다.

 

너는 말도, 차도 탈 수 있다.

둘이서도, 셋이서도 갈 수 있다.

허나 마지막 걸음은 혼자 내딛어야 한다.

 

때문에 어떤 자식도

어떤 능력도

홀로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것만큼

유익하지는 않다.

 

 

가을의 시작

 

가을이 흰 안개를 흩뜨린다

늘 여름일 수는 없으니!

밤은 등불 빛으로 나를 유혹하며

추위를 피해 어서 귀가하라고 한다

 

머지않아 나무는 헐벗고 정원은 텅 비겠지

그저 야생이 포도송이만 집 주위에서

빛을 발하겠지, 그리고 머지않아 그 역시 지고 말겠지

늘 여름일 수는 없으니!

 

유냔의 나를 즐겁게 했던 것은

더이상 그 시절의 기쁜 빛을

간직하지 못하고 이제는 내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

늘 여름일 수는 없으니!

 

아, 사랑이여, 경이롭던 열정이며,

수년간 쾌락과 노력으로

내 피 속에 날 타올랐던 것이여,

오, 사랑이여, 그대 역시 시들어 가려는가?

 

 

헤르만 헤세 삶을 노래한 시

 

봉사

 

처음에는 경건한 군주들이 다스리고 있었네.

밭과 곡식과 쟁기를 닦고

희생과 절제의 권리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목마른 인류 속에서 행사하기 위해서.

 

해와 달의 균형을 지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의 올바른 지배를

인류는 갈망하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의 영원히 빛나는 모습은

괴로움과 죽음의 세계를 모르네.

 

신의 자손들의 신성한 계통은 이미 사라지고

인류만이 남았네.

존재에서 멀리 떠나 기쁨과 오뇌에 비틀거리며

절제도, 감격도 없이 끝없이 생성하면서.

 

그로나 진정한 생명의 예감은 결코 죽지 않았네.

기호의 유희와 비유와 노래에 의하여

몰락하면서도 신성한 두려움의 경고를 계속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

 

언젠가는 암흑이 사라지는 일도 있으리.

언젠가는 시간이 방향을 바꾸는 일도 있으리.

태양이 다시 산이 되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의 손에서 재물을 받는 일도 있으리.

 

 

비탄

 

우리에게 존재가 주어지지 않았지, 우리는 흐름에 지나지 않으니,

기꺼이 모든 형태 속으로 흘러들어가네.

낮으로, 밤으로, 동굴로, 사원으로

우리는 뚫고 나가네, 존재에의 갈망이 우리를 몰아 대기에.

 

우리는 쉼 없이 형식을 차례로 채워 나가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고향, 행복, 가차없는 운명은 아닌 것.

우리는 언제나 도상(途上)에 있고 언제나 손님일 뿐.

밭도, 쟁기도 우리를 부르지 않으며 우리를 위해 빵이 자라지도 않네.

 

산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는지 우리는 결코 모르리.

그는 손안의 찰흙인 듯 우리를 주무르시네.

찰흙은 말이 없고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도, 웃지도 울지도 않네.

이겨질지언정 구워져 야물어질 순 없으리.

 

언젠가는 굳어져 돌이 되어 영속하리!

그러한 동경이 우리의 가슴속을 영원히 흐르네.

하지만 불안한 전율 역시 영원한 것.

우리, 도상에서는 결코 쉴 수 없기에.

 

 

영합

 

결코 굴하지 않는 것, 소박한 것은

우리의 의심을 허락하지 않네.

세계는 평탄하고 심연의 전살 따위는 허황된 것.

그는 이렇게 간단히 말하지.

 

예로부터 정들어 살아오는 편안한 두 차원(次元) 외에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면,

거기서 우리 어찌 편안히 살 수 있으리.

거기서 우리 어찌 마음놓고 살 수 있으리.

 

하여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차원을 없애 버리자!

 

굴함을 모르는 자가 진정 옳다면,

심연을 들여다봄이 그처럼 위험하다면,

제삼의 차원은 없어도 좋을 테니까.

 

그러나 남몰래 우리는 동경하네.

 

우아하게 정신적으로, 아라비아 무늬처엄 현묘하게,

우리의 목숨은 요녀(妖女)처럼

조용히 춤추며 허무의 둘레를 맴도는 듯하네.

우리의 존재와 현재를 제물로 바치던 허무의 둘레를.

 

 

숨결처럼 가볍고 가락의

꿈의 아름다움, 부드러운 희롱이여,

그대의 쾌활한 표면 속 깊숙이

밤과 피와 야만에의 동경이 희미한 빛을 뿜네.

 

공허 속을 강요 없이 마음대로, 우리의 목숨은

자유롭게 언제나 놀이의 몸가짐으로 맴돌고 있네.

그러나 남몰래 우리는 동경하네, 현실을

생산을, 탄생을, 고뇌를 그리고 죽음을.

 

 

문자

 

때때로 우리는 팬을 움켜쥐고서

하얀 종이에 기호를 쓰네.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네. 누구나 다 아는 것을.

그것은 규칙이 있는 장난.

그러나 야만인 혹은 달나라 사람이 와

그 종이쪽지를, 꼬불꼬불한 르네 문자의 행렬을

신기한 듯이 눈앞에 끌어가 살펴본다면,

거기서 그를 쳐다보는 것은 낯선 세계의 형상,

낯설고 이상한 화랑(畵廊)이리라.

A와 B가 인간으로서, 짐승으로서,

눈으로서, 혀로서, 손발로서,

저기서는 신중하게, 여기서는 본능에 몰려 움직임을 보리라.

눈 위에 난 학의 발자국을 보는 느낌이리라.

함께 뛰고 쉬고 고뇌하고 날아가는 느낌이리라.

존재 가능한 온갖 생물이

움직이지 않는 검은 기호의 행간에 출몰하는 것을,

이어진 수식 사이를 지나가는 것을 보리라.

사랑에 불타고 고통에 경련하는 것을 보리라.

 

이 문자의 이어진 창살 속에서

맹목적인 충동에 몰린 세계 전체가

축소된, 마법으로 조그만 기호 속에 갇힌 현상으로 나타나리라.

기호는 부자연한 자세로 거닐며

서로 닮았기 때문에 생의 충동과 죽음, 환락의 고뇌가

거의 분간할 수 없는 형체가 되고......

 

그러면 마침내 이 야만인은

견딜 수 없는 불안으로 소리치고 불길을 북돋우고

얼굴을 쳐들오 기도문을 외며

수수께끼 문자 기득한 하얀 종이를 불길에 바치리.

그리고 그는 졸음 속에서

이 비현실의 세계가, 마법에 걸린 상태가,

참을 수 없는 것이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흡수되어 들어감을 느끼고

탄식하고 미소하며 기운을 되찾으리.

 

 

옛 철학 책을 읽으면서

 

어제는 아직 매력과 고귀함에 넘쳐 있었던

사상의 정수, 세기를 거쳐온 결실.

그것이 갑자기 바래고 시들어 의미를 잃네,

올림표나 음자리표를 지워 버린 악보처럼.

 

한 건물의 신비로운 중심(重心)이 사라지고

덧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흔들흔들

흔들려 무너지고, 조화로이 보이던 것이

영원히 메아리를 남기며 무너져내리네.

 

또한 우리가 사랑하고 감탄하는 

늙고 어진 얼굴도 주름투성이가 되어

죽음의 상을 드러내고, 정신처럼 반짝이는 빛은

가련히 불안한 주름 속에 떨고 있네.

 

그처럼 우리 오관(五官)의 환희도

느낌을 받자마자 비뚤어져 불만이 되네.

모든 것은 썩고 시들고 죽어야 한다는

인식이 이미 깃들여나 있는 듯이.

 

이 역겨운 시체의 골짜기 위에

고민은 해도 썩는 일 없이

정신은 동경에 발갛게 불타는 봉화를 올리고

죽음을 이겨 내고 자기를 불멸이게 하네.

 

 

바희의 토키타에 부쳐

 

깊은 침묵이 엉겨 굳어지고...... 암흑이 도사리고 있네.......

거기에 갈기갈기 갈라진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쳐

맹목의 무(無) 속에서 세기의 밑바닥을 끌어내

공산을 이룩하고 빛으로 어두운 밤을 뚫어 내어

산등성이와 꼭대기, 산비탈과 심연을 드러내고

대기를 부드럽게 푸르게, 대지를 두텁게 하네.

 

품고 있는 싹을 햇살은 둘로 쪼개어

행위와 싸움을 일으키네.

놀란 세계는 빛을 뿜으며 타오르네.

빛의 씨앗이 떨어진 곳에 변화가 일어나고,

질서를 낳네, 찬란한 세계는

삶의 찬가를, 창조자인 빛의 승리를 노래부르네.

 

커다란 충동은 또 되돌아서서 산을 향해 비약하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영위를 뚫고

아버지인 정신을 향해 매진하네.

커다란 충동은 기쁨이 되고 괴로움이 되고

말이 되고 그림이 되고 노래가 되어,

세계를 하나씩 대사원의 개선문으로 삼네.

그것은 본능이고 정신이고 행복이고 싸움이고 사랑이네.

 

 

 

산속 수도원의 객이 된 나는,

모두 기도하러 갔을 때 도서실로 들어갔지.

저녁빛을 받으며 벽을 따라

수없이 많은 영피지의 책등에서 이상한 문자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네.

지식욕에 넘치고 취하여 시험 삼아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네.

<불가헤한 과제에의 마지막 한걸음>

이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

금빛 가죽의 또 다른 사절판 다른 책 표지에는

작은 글자로 쓰여 있었네.

"어째서 아담은 다른 나무에서도 따먹었는가......"

다른 나무에서? 어떤 나무에서? 생명의 나무에서!

그럼 아담은 불사신인가. 내가 여기에 온 것은

헛일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네.

이절판 책에 내 눈이 멎었네.

표지도, 가장자리도, 모서리도 무지개 빛깔로 빛나고 있었네.

제목은 친필로 이렇게 쓰여 있었지.

'색과 음의 의미의 일치.

모든 색과 색의 혼합에

음조가 어떻게 호응하느냐의 증명'

아아, 색의 합창이 얼마나 희망에 넘치게 반짝였던 것일까!

나는 희미하게나마 느끼기 시작했지.

책을 집을 때마다 그것이 증명되었네.

이것은 낙원의 문고,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 온 모든 의문,

나의 목을 태워 온 인식의 갈증에 대한

대담이 여기 있었네. 굶주린 모든 이에게는

정신의 양식이 마련되어 있었네.

 

어느 책이건 얼핏 스쳐보아도

많은 기대감을 안겨 주는 제목이 적혀 있네.

거기에는 어떤 어려움에도 대처할 방도가 있었네.

거기서는 생도가 가슴을 설레며 탐내던 과일을,

명인이 대담하게 잡으려던 광일을,

모두 와서 기도하며 딸 수가 있었네.

모든 지혜나 시나 과학의

가장 깊고 깨끗한 의미가,

모든 설문의 신비로운 힘과

그것을 푸는 열쇠와 말이,

정신의 정묘한 진수가 거기에,

전대미문의 신비로운 명저 속에 가득 담겨 있었네.

모든 종류의 의문이나 비밀을 푸는 열쇠가

거기 숨어 있었네. 신비로운 시간의 은혜를

받은 자는 그 열쇠를 손에 놓었지.

 

이리하여 나는 두 손을 떨면서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놓고

마법의 상형문자를 풀었네.

마치 전혀 모르는 일을 꿈속에서 반 장난으로 해보다가

성공하는 일이 흔히 있는 것처럼.

십이궁 속의 별이 빛나는 정신의 공간으로

나는 날개를 단 것처럼 날아들었네.

거기서는 모든 민족이 구체적으로 본 계시,

천 년은 지내 온 세계 경험의 유산 모두가

조화로이, 끊임없이 새로 결합하고

서로 관련을 맺고 있었지.

낡은 인식이나 상징 혹은 발견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보다 높은 의문이 새로 생겨나네.

하여 나는 읽으며서 몇 분이나 몇 시간 동안에

전인류의 길을 다시 한 번 걷고

그 가장 오래고 가장 새로운 지식의

공통의 깊은 의미를 받아들였네.

상형문자의 모습이 서로 얽혔다 풀어지고

정연한 윤무를 이뤘다 흩어져 흘렀다가

모여서 새로운 결합을 이루는 것을 나는 읽고 보았네.

그것은 한없이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이는

상징적인 만화경이었네.

 

그것을 보다 눈이 부셔

잠시 책에서 고개를 들고는

내가 이곳의 유일한 객이 아님을 알았네.

방에는 책을 향하고 한 노인이 서 있었네.

아마 문서계이리라. 진지하고 열심히,

분주한 듯이 책을 살펴보고 있었네.

그의 열성적인 일의 종류와 의미를 아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엇네.

노인은 고령자의 가는 손으로

한 권의 책을 꺼내어 제목을 읽더니

메마른 입으로 거기에 입김을 불었네...

감미로운 독서 시간을 보장할 듯한

황홀한 제목이었지!

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문질러 지워 버리고,

그 대신 미소지으며 새롭고 다른,

전혀 다른 제목을 쓰고,

발걸음을 옮겨 여기저기서 또 다른 책을 꺼내 들어

제목을 지우고 다른 제목을 쓰네.

 

나는 어리둥절해서 얼마 동안 그를 보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몇 줄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돌렸네.

그러나 방금까지 나를 즐겁게 하던 상징의 연속을

나는 이미 찾을 수가 없었네.

내가 지금까지 떠돌던 기호의 세계는

그토록 풍성하게 세계의 의미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풀려나 총총히 달아나는 것 같았지.

그것들은 흔들리고 맴돌며 흐려지는 것처럼 보이고,

녹아 없어지고, 텅 빈 양피지의 잿빛 미광 외엔

아무것도 뒤에 남기지 않았네.

어깨에 사람의 손길을 느껴

쳐다보니 부지런한 노인이 옆에 서 있었네.

나는 일어섰네, 미소하며

그는 내 책을 집어들었지. 나는 오싹 소름이 끼쳤네.

그의 손가락이 해면처럼 책 위를 더듬어 갔네.

텅 빈 가죽에 그의 펜은 꼼꼼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새로운 제목과 의문과 약속과

가장 오랜 의문의 가장 새로운 변형을 썼네.

그러더니 말없이 책과 펜을 들고 갔네.

 

 

헤르만 헤세의 시는 소설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과 시는 현대인들에게도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며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점검하게 합니다. 시를 통해 헤르만 헤세의 메시지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